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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Kathryn Sargent

Photography: Sam Tinson

 


“어떤 것들은 반드시 부숴져야만 합니다.” 어느 이름 모를 현자가 말했 듯, "그래야 새로운 것이 만들어질 수 있죠. 파괴는 단지 생성의 또 다른 모습일 뿐입니다." 캐서린 사전트가 영국의 엡섬 컬리지(Epsom College)에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젊은 여성으로서 패션을 공부할 때 진심으로 여겼다는 이야기는 속담과 다름 없습니다. “훌륭한 디자이너가 되려면 옷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그녀가 말합니다. “그래서 옷을 분해한 뒤 다시 합치는 일을 시작했죠.  엡섬에는 옷을 잘 입는 사람들이 많아서 바자회에서 좋은 물건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의복 해부학을 이해하고 싶었던 사전트의 열정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후 수십 년 동안 데이비드 베컴과 영국 왕실을 위한 옷을 만들었고, 작년 닉 텐티스(Nick Tentis)가 있던 곳에 팝업 아틀리에를 열어 지금은 ‘새빌 로 최초의 여성 재단사(또는 좀 더 정확하게, ‘새빌 로에 자신의 이름을 내걸은 최초의 여성’)’라는 수식어를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그녀는 브룩 스트리트 근처의 집에서 소파에 앉아 “윈도페인 체크 천장”을 깼다며 쾌활히 웃곤 합니다. 사전트는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오래도록 Y 염색체가 지배한 업계에서 여성으로서 자신의 핀스트라이프를 따 내야만 하는 일입니다.  "나는 지금 갱단에 있어요."라고 그녀가 말합니다. "그들은 항상 절 알았어요. 저는 보직들을 모두 거쳐서 이 자리까지 왔으니까요. 새빌 로에서 이것은 혁명이 아닌 진화의 사례라 할 수 있죠. 패션계에서보다 느린 속도로 변화가 일어나요.  제가 비스포크 테일러링 하우스를 소유한 여성이라는 점은 이곳에서 아직도 이야깃거리입니다. 하지만 몇 년 뒤에는 그렇지 않을 거예요. 첫 여성 총리가 더는 화젯거리가 아닌 것처럼요.”

 

Kathryn Sargent

새빌 로가 “각기 다른 배경을 지닌 사람들로 이뤄진 풍부하고 다양한 공동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 직물 유산의 중심지인 리즈에서 온 사전트는 기브스 & 호크스 (Gieves & Hawkes)에서 견습 생활을 마친 뒤 자신의 자리를 얻기 위해 분투해야만 했습니다.  "저는 젊고, 야심찼고, 화가 많았죠. 그리고 ‘내가 하겠어!’라는 마음이 가득했어요. 재단을 하게 해 달라고 설득을 해야 하긴 했죠."

그녀가 수석 재단사의 자리에 올라섰을 때, 새빌 로 1번지의 예복 전통이 창작자로서의 길에 영향을 미쳤을까요? “대단히요. 제가 그곳에서 처음 한 일은 왕실의 장례에 사용한 검은 완장과 외국 국왕의 제복 등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통가 왕의 대관식 제복을 만들기도 했죠.  그런 일은 매우 엄격한 커팅이 필요했기 때문에 아주 좋은 경험이 되었어요.  전 기브스 가문의 5대째이신 로버트 기브스 씨와 생전에 함께 일하는 행운을 누렸죠.  로버트씨는 저를 잘 돌봐 주셨어요.  정말 그분의 가족 회사를 위해 일하는 것처럼 느껴졌죠. 당시에 7년 동안 일한 사람들은 휴대용 시계를 받기도 했어요.”

사전트에게 있어서 특정한 컷이나 하우스 스타일을 위해 재단사를 선택하는 일은 본말이 전도된 경우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비스포크의 아름다움은 모든 고객이 각기 다르다는 거예요. 저는 그 다양성과 어려움을 무척 좋아합니다. 테일러링은 고객이 뭘 입어야 할지 말해 주는 일이었어요. ‘당신은 블루 핀스트라이프를 입어야 해요, 당신은 이게 필요해요, 저게 필요해요.’ 하는 식이었죠.  그런 철학은 수트를 회의실용 유니폼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저는 ‘수트가 당신을 입는 것이 아니라, 수트는 당신의 일부다.’ 라는 말을 좋아해요.  이 말을 따르자면 재단사는 자신의 디자인을 고객에게 들이미는 것이 아니라,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의 스타일을 이해해야 하죠.  새빌 로의 모든 재단사가 만든 수트를 하나씩 다 가지고 살펴본다면 제각기 다를 거예요. 우리의 눈과 기술이 서로 다 다르기 때문이죠.  전 고객의 첫 방문을 개인 상담이라고 생각해요. 스타일을 하나하나 조언해 드립니다.”

그녀의 원래 계획은 기브스 & 호크스 (Gieves & Hawkes)에서 경력을 쌓는 것이었지만 그곳에서 15년을 보낸 뒤, 여성용 의복 제작에 대한 소망을 품고 독립을 선택했습니다. 그녀가 좋아하는 또 다른 격언으로는 영국 작가 케이틀린 모건의 “여자가 ‘입을 옷이 없어’라고 할 때는 ‘오늘 내가 되고픈 사람이 입을 옷이 없어’라는 뜻이다.”가 있습니다.  여성 의류에 대한 그녀의 접근 방식을 보여 주는 것일까요? "네, 맞아요. 자신만의 스타일을 표현하는 일에 관한 것이죠. 그리고 그건 상황과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 전 아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여성복을 만듭니다. 경우에 따라 이브닝 드레스 위에도, 재킷으로도 입을 수 있고, 학교에선 청바지에 입을 수도 있죠. 바지와 매치해 수트로 입을 수도 있습니다.”

여성복에는 싱글 브레스티드 또는 더블 브레스티드, 노치 라펠 또는 피크 라펠 등의 뚜렷한 선택지가 없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평생 포커를 친 사람이 복잡한 브릿지 게임을 배워야 하는 상황과 다름 없을 것입니다. 사전트는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대부분의 새빌 로 재단사들이 여성복을 기피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은 체형이나 치수가 모두 각기 다릅니다." 사전트가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성복 제작에는 무척 다양한 접근법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에르메스 재킷과 같이 승마 스타일에서 진화한 듯한 형태가 잡혀 있고 꼭 맞는 종류의 옷들이 있죠. 그 외에도 저는 남성용 수트의 여성용 버전인 보이컷에 더욱 능합니다. 접근법은 체형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옷을 제작해 드리는 여성과 깊이 공감하는 듯한 느낌을 받아요.”

“이에 대한 제 접근 방식은 늘 같았습니다. 전 이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제가 정말 사랑하는 일을 할 뿐이죠.”

그녀는 어떤 종류의 도전이라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그녀는 직업적으로 다루는 원단(“메리노는 정말 강합니다. 스팀으로 가공하거나 고정할 수도 있고, 줄일 수도, 늘릴 수도, 모양을 만들 수도 있죠. ‘가공되었다’는 것을 전혀 느낄 수 없도록요”)뿐 아니라 도구와 모든 제작 과정에도 열정적입니다. 덕분에 아뜰리에의 중심인 커다란 탁자는 접수대로도, 작업대로도, 디스플레이 유닛으로도 쓰여 고객은 의복 제작의 작은 부분까지도 모두 직접 볼 수 있습니다. 

옆방에는 보조 재단사이자 고객의 치수를 재기도 하는 보조 재단사 알리스타 니모(Alistair Nimmo )를 비롯한 몇 명의 직원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전트는 숍을 운영하면서도 고객 응대, 측정, 커팅, 패턴 제작 등 모든 과정을 직접 맡아 진행합니다.  "제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은 커팅과 피팅 그리고 고객과 함께하는 작업입니다.” 그녀가 말합니다. “전 한 뭉치의 치수들을 쌓아 두고 누군가의 모습을 생생히 그리며 연필을 들고 패턴을 자르는 등의 창작 과정을 그 무엇보다도 사랑합니다.  이에 대한 제 접근 방식은 늘 같았습니다. 전 이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제가 정말 사랑하는 일을 할 뿐이죠.”

6 Brook Street, Mayfair, London W1S 1BB

스콧(Nick Scott): 리포트 (Robb Report)영국판의 에디터이며, 레이크 (The Rake)의 전 편집장, 지큐(GQ) 오스트레일리아의 부편집장이다. 그는 런던에 살며 에스콰이어(Esquire), 가디언(The Guardian), 파이낸셜타임스(The Financial Times )에 특집 기사를 실기도 했다.